LOVE

그때 좋았지

우리의 뇌는 힘든 기억을 삭제시키고 좋았던 기억들만 남긴다

기억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장된다. “고생도 추억”이라는 말처럼 당시엔 아무리 힘들었어도, 뇌에서는 생존을 위해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잊어버린다. 때론 감각이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뇌가 저장할 수 있는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인덱스를 통해 목표를 찾는 것처럼 우리의 뇌 또한 감각, 오감을 이용하여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연애의 마지막은 행복하지 않기에 연인에게 이별을 고할 것이다. 연애가 종료되는 순간 우리는 남녀 상관없이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전애인에 대해 얘기한다. 술자리에서의 전애인 얘기는 마치 마른 오징어 같아서 씹으면 씹을 수록, 말하면 말 할수록 재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얘기의 주제는 쌍년에서 민지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앞에서 말했다 싶이 우리의 뇌는 힘든 기억을 삭제시키고 좋았던 기억들만 남긴다. 우리는 우리의 뇌가 완전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 “그때 좋았지…”, “참 좋은 애였어…” 라고 말하며 연인과의 좋았던 추억을 생각한다. 착각 속에 빠진 우리는 술 한잔이 주는 알량한 용기와 함께 “자..? 잘 지내..?”라며 전화를 건다. 이런 전화는 대부분 연결되지 않지만, 연결이 되더라도 기대와 달리 찝찝함만을 남긴다.

눈오는 겨울날 눈과 함께 헤어진 첫사랑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핸드폰엔 그녀의 이름 세글자와 함께 부재중이 찍혀 있었다. 평소였다면 회신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험 전날 벼락을 맞은 내 뇌는 “담배피러 가야지..”라는 핑계를 대며 도서관에서 빠져 나와 초록색 전화 버튼을 눌렀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보며 내 마음도 타들어 갔다. 전화를 받은 그녀의 목소리 넘어로 시끄러운 노래와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 귀에는 최고급 해드폰이라도 낀것마냥 그녀의 목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알코올 향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 알코올에 취한 것 마냥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뱉어낸 대답조차 “잘 지내”라는 성의 없는 단답이었다. 그녀에게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흐느끼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수험생 시절을 함께 보낸 그녀는 힘든 와중에도 항상 밝고 웃음이 많았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녀와 함께 눈이 쌓인 횡단보도를 건너며 관계에 초록불을 밝혔다. 하지만 초록색을 통해 다시 이어진 순간 하늘에선 담뱃재가 내리고 있었다. 중간고사를 끝내고 나와서 피는 담배는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다. 담배 냄새와 눈 앞의 초록의 나무들이 그녀를 떠올리게 만들며 씁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