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존재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에게 평생의 동반자는 연인이 아니라 불안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너무나 유명한 명언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해왔다. 하지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그동한 논의해보지 못한 존재 ‘인공지능’이 등장하였다. 새롭게 등장한 ‘GPT 4o’은 보다 사람에 가까워졌다. 인공지능은 이제 사진을 통해 상황을 인식하고,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데카르트는 ‘생각’으로 사람이 존재한다고 구분지었다. 그럼 인공지능은 어떤 기준으로 사물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지 판단 할 수 있을까? 기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자율주행 자동차’이다. 자율주행의 기초 원리는 컴퓨터가 운전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사람처럼 차선을 바꾸고, 길가에 있는 사물을 인식해서 회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판단을 내리는 컴퓨터의 작동 방식은 사실 간단하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0’, 전기가 공급되는 ‘1’ 딱 이 두 가지로만 컴퓨터는 작동한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창의적인 인공지능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한다 해도 이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인식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물의 종류가 무엇인지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토끼는 ‘0011’ 고양이는 ‘1101’ 사람은 ‘0101’ 이런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0’과 ‘1’로만 세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 사물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부자건, 아름답건, 여자건, 남자건 상관없다. 컴퓨터에게 당신은 무조건 ‘0101’이다.

우리는 인종,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정말로 우린 ‘0101’에 불과한가? 하이데거는 이 질문에 대답한다. “존재(있음)의 의미를 질문하는 존재자(있는 것)는 인간 밖에 없다.” 그렇다면 존재 의미를 질문하는 존재자,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간 속에 개별자로서 '거기 있는' 기분(Stimmung)에 사로잡히는 존재자다. 이를 '현존재(Dasein)'이라고 한다. 현존재는 세계를 나에게 친숙한 '~로서'의 의미로 파악한다. 현존재인 우리는 ‘물’이란 존재를 ‘H2O’라는 사실로 파악하지 않는다. 목 마를 때 마시는 물’로서’, 샤워할 때 씻는 물’로서’의 의미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은 ‘0101’이라는 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학생으로서의 ‘나’, 애인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처럼 다양한 의미를 지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다양한 모습 중에 세상에 맞춰가는 ‘나’ 또한 존재할 것이다. 이런 모습을 하이데거는 세상 사람(Das Man)이라 불렀다. 자신에 대한 이해 없이 세상사람처럼 사는 방식을 비본래적 존재양태라 부른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이유도 근거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자이다.”라고 말한다.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시간이라는 조타수는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죽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걱정’과 ‘불안’으로 범벅되어 있다. “수능을 망치면 어떡하지?” “학점이 낮으면 어떡하지?”, “취직을 못하면 어떡하지?” “결혼을 못하면 어떡하지?” 10대부터 40대까지 모두가 불안에 떨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것들은 불안의 일부를 형체화 한 것일뿐 진정한 불안의 원인이 아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삶에 ‘죽음’이라는 결말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개념은 극복이 불가능한 개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극복이 가능한 불안함을 만들고 그것들을 노력을 통해 극복하며 불안을 작게나마 극복하는 것이다. 불안이 극복의 대상은 맞지만,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불안이 비본래적 존재양태를 본래적 존재 양태로 바꿔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이 행동을 하기 위해선 그 행동을 ‘할만 한 기분’이 들어야한다.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본래성을 회복할만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성찰없이 군중 속에서 살아가는 ‘비본래성’을 벗어나기 위해선 행동하기 이전에 불안한 기분이 들어야한다.

우리는 빠르게 인공지능이 발전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불안을 느낀다. 또 유행엔 뒤쳐지지 않는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뒷말이 나오지 않는지 등 사소한 불안도 경험한다.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에게 평생의 동반자는 연인이 아니라 불안이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당연한 모습이다. ‘죽음’이란 개념 때문에 불안이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불안이 곧 죽음은 아니다. 지금 불안하다면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그냥 받아들이자.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세상 사람(Das Man)에서 한 발 물러나 그냥 사람(Man)으로 존재해 보는 것은 추천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내가 아닌 그냥 ‘나’(Man)는 어떤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