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광장과 밀실

눈과 눈을 마주보기 부담스러워 창과 창을 마주보며 사람을 사귀는 것

핸드폰을 키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곳은 ‘인스타그램’이다. 굳이 인스타그램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 카페, 밴드, 커뮤니티, 블로그 등 다른 사람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찾아본다. 별 다른 목적이 없어도,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생긴다면 SNS에 들어간다. 우리는 왜 이렇게 SNS에 집착하는 것일까. 마크 주커버그가 Facebook을 개발하면서 SNS라는 것이 주목받았다. 초기 페이스북은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 각광받았다.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페이스북을 통한 회사도 탄생했고, 스타들도 탄생했다. 페이스북의 열풍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으로 번져나갔다. 유명한 틱톡 스타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인구 수보다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SNS는 갑자기 어떻게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왜 인종,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전 세계인들이 모두 열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광장’과 ‘밀실’ 이 두 키워드에 집중하여 소설 ‘광장’을 읽어보았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은애와 윤혜” 이름만 바뀌였을 뿐 ‘밀실’과 ‘광장’ 공존할 수 없는 두 공간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명준은 남과 북의 체제를 모두 겪었고, 남과 북의 여자를 만나 사랑도 했다. 하지만 ‘체제’라는 거대한 무력 앞에서 개인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다. 남과 북을 오가며 두 공간을 모두 겪은 배를 타고 그는 제 3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이명준에게 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였다. 그에게는 ‘배’ 자체가 제 3국이었다. ‘배’는 그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광장이자 밀실이다. 완벽하게 사방이 트여있고, 모두에게 관찰될 수 있는 바다 한 가운데서 다른 승객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이것이 이명준이 향하던 제 3국이었을 것이다. 배가 바다를 벗어나 육지의 천천히 다다를수록 그의 유토피아 세상은 천천히 부셔져갔다. 부셔진 세상에서 나와 그가 가장 처음 본 것은 바다였다. 그가 본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척이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세’장이 깨진 파랑새는 무거운 비늘 속으로 숨어 들어가 이번엔 영원토록 지속될 유토피아를 찾았다.

Social Networking Service, 정말 현대적인 단어라 생각한다. 50년 전만 해도 이런 단어는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마을 회관, 회사, 광장, 이웃집, 여러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 과거의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사회적 관계들을 맺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완전한 밀실에 갇혀 하루를 보낸다. 코로나 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이미 ‘비대면’에 적응해버렸다.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음식을 주문하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 사람간의 대화를 단절 시킨다. 적응한 사람들은 밀실 속에 사는 삶, 개인주의적인 삶 그리고 요즘 말로는 ‘MZ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21세기의 MZ들은 19세기의 MZ였던 이명준처럼 밀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밀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SNS’라는 창을 내었다. “인간관계 그 자체는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미 스트레스가 가득한 삶에 인간관계를 더해 인간관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MZ들이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이유이다. 광장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좋던싫던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을 봐야한다. 그 과정 속에서 생기는 갈등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광장에 자신의 모든 것은 노출하기엔 부담되지만 작은 창을 통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는 것. 눈과 눈을 마주보고 사람을 만나기에 부담스러워 창과 창을 마주보며 사람을 사귀는 것. 이것이 SNS가 급부상한 이유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