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방식
결과가 바뀌면 이유 또한 바뀌는가
‘자아’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아가 눈에 보인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자아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아를 표출하기에 사람들이 보인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일까?
자아는 단순히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들리게 하고, 느끼게도 만든다.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가치관과 생각을 표현하고, 헤어스타일과 패션으로 취향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겉모습이나 말투만 보고도 그 사람의 내면까지 판단하려 든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만약 머리와 옷을 전부 통일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아의 드러남은 패션이라는 결과물 속에서 구체화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담아내는 방식이 바로 패션이다. 그런데 이 결과가 외부 압력으로 인해 강제로 획일화된다면, 단순히 겉모습이 같아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아’라는 이유를 표현하기 위해 ‘패션’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내가 특정한 옷을 고르고 특정한 헤어스타일을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 과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라는 이유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패션은 자아라는 이유가 바깥으로 드러난 결과물이다.
그런데 만약 이 결과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과 강제로 통일된다면 어떻게 될까? 패션이라는 결과가 획일화되면, 그 결과를 만들어낸 이유마저 획일화되는 것일까? 겉모습이 같아지면 그 사람들의 자아도 결국 같아진 것처럼 취급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아는 여전히 각자 다르지만, 표현의 도구가 막혀버려 단순히 드러나지 않을 뿐일까?
여기서 중요한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결과가 바뀌면 이유 또한 바뀌는가? 패션이라는 결과는 분명 자아를 드러내는 창구이지만, 그 창구가 막히면 결국 자아의 형성 과정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드러날 수 없는 자아는 점차 위축되거나, 외부가 강제하는 방식대로 자기 자신을 재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의 신체현상학에 따르면 자아는 단순히 내면의 사고가 아니라,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목소리, 말투, 몸짓, 옷차림 같은 것들은 그저 꾸며진 껍데기가 아니라,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통로다. 따라서 패션이나 말투가 강제로 획일화된다면, 이는 곧 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제한하는 것이며, 자아가 펼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축소되는 결과를 낳는다.
니체는 인간을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스타일로 창조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말투와 패션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다. 그렇다면 획일화는 개인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고, 결국 자아 창조의 힘을 꺾는 폭력이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이는 인간을 모두 똑같은 ‘작품’으로 만들어버리는 퇴행이다.
결국 패션이나 말투를 강제로 통일시킨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 결과의 동일화가 아니다. 그것은 곧 자아가 드러나고 창조될 수 있는 방식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런 획일화가 개인의 자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영향을 얼마나 강하게 받는지는 각자의 저항력과 자기 해석의 힘에 달려 있을 뿐이다.